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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천재로 양자물리학, 우주 여행 등 과학기술에서 선구적 비전을 제시해온 프리먼 다이슨(Freeman Dyson)이 2020년 2월 28일 향년 96세로 타계했다.

다이슨은 양자 전기역학(quantum electrodynamics) 이론에 공헌한 영국계 미국인 물리학자로 프린스턴(Princeton) 명예 교수이자 다양한 과학 단체의 회원이었다.

다이슨의 죽음은 그의 딸 미아 다이슨(Mia Dyson)에 의해 뉴저지 프린스턴 최고 연구기관인 IAS(Institute of Advanced Study)를 통해 발표됐다. IAS는 과학계 거장 엘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로버트 오펜하이머(J. Robert Oppenheimer) 등이 몸담았던 곳이다.

발표에 따르면 다이슨은 1953년부터 1994년까지 근무했던 IAS 정기 방문 중 실수로 넘어지면서 부

상을 입었고, 금요일 아침 병원에서 사망했다.

IAS의 레온 레비(Leon Levy) 디렉터 로버트 디크그라프(Robbert Dijkgraaf)는 “(다이슨은) 현대 입자 물리학, 자유 수학자, 우주 여행 옹호자, 우주 생물학 및 군비 해체, 미래 학자, 영원한 대학원생”이라며 “사려 깊은 아이디어로 많은 선입견에 반항했다. 항상 인간 현장을 현명하게 관찰하는 수필가였다. 그의 비밀은 단순히 끝까지 인생의 모든 것을 긍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이슨은 1923년 12월 15일 영국 버크셔에서 태어나 17세에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했다.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그는 학계에서 선발된 왕립 공군의 과학자로 일했다. 전쟁 후, 그는 캠브리지로 돌아와 학위를 마쳤다.1947년, 그는 코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 뉴 멕시코 로스알라모스에서 미국의 비밀 핵폭탄 연구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선구자 핵 물리학자 한스 베쓰(Hans Bethe)와 함께 공부했다.

다이슨은 입자 물리학 및 천체 물리학에서 우주 여행, 생물학 및 기후 변화 등 과학의 여러 분야에서 수학적 역량을 발휘했다.

맥스 테그마크(Max Tegmark) MIT 물리 및 AI 교수는 “다음 달에 프리먼 다이슨을 다시 방문 할 계획이었고, 오늘 우리가 이 과학의 거장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 슬프다. 그에게 너무 크거나 너무 거친 아이디어는 없었으며, 가장 작은 빌딩 블록을 알아내는 데 있어 주요한 주류 연구 외에도 별 빛을 수확하는 다이슨 구(Dyson spheres)를 착안, 우리의 원거리 과학에 대한 최초의 철저한 과학적 분석을 발표했다”고 SNS 링크드인에 밝혔다.

이어 테그마크는 “그의 가장 큰 공헌은 아원자 입자와 파인만 다이어그램(Feynman diagrams)의 구불구불한 선과의 상호 작용을 설명하는 수학적 공식을 통합한 것”이라며 “노벨상 수상자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는 우주가 이해하기 쉬울수록 무의미 해 보인다고 말한 반면 프리먼은 훨씬 더 낙관적이었다. 비록 그는 우리 우주가 무의미하다는 데 동의했지만, 생명체가 우주를 통해 퍼져 나가면 인생이 이제는 더 많은 의미로 채워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의한다”고 밝혔다.

미아 다이슨은 “당신은 세상이 그의 눈을 통해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할 수 있었고, 물리학 연구를 통해 모든 공식과 자연 법칙 및 모든 신비를 이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저서로는 《상상의 세계》 (Imagined Worlds)

《에로스에서 가이아까지》 (From Eros to Gaia)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Disturbing the Universe)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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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사망
BC580~BC500
 출생지-사망지
사모스 섬~
 원어 
Pythagoras
 직업
정치가, 수학자, 철학자


정치가수학자철학자처음 사모스 섬에서 살다가사모스는 포류크라테스가 정적이었던 관계로 성년이 되어 이탈리아로 옮겨가서 크로톤 시에서 살았다이 당시(기원전 6세기 말이곳의 권력은 귀족계급의 손아귀에 있었다피타고라스는 '질서'에 관한 반동적인 학설을 제기하였는데이 질서란 말은 사회생활에 적용할 경우 귀족권력의 의지대로 해석되고 있었다그는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질서파괴로 간주하였다.


피타고라스의 생애와 업적

그리스의 종교가·철학자·수학자피타고라스는 만물의 근원을 ''로 보았으며수학에 기여한 공적이 매우 커 플라톤유클리드를 거쳐 근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오늘날 피타고라스의 정리의 증명법은 유클리드에 유래한 것이며그의 증명법은 알려져 있지 않다.

에게해 사모스섬에서 태어났다아버지 므네사르코스(Mnesarchos)는 이집트그리스이탈리아에게 해 등지를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는 상인이었으며 아들이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어려서 부터 리라 연주와 그림운동을 배울 수 있도록 하였고 긴 여정의 장사길에 함께 데려가기도 하였다이후 피타고라스의 스승이었던 탈레스(Thales)의 주선으로 이집트로 유학을 떠나 23년간 수학하였으며페르시아의 침략으로 이집트가 함락되고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이송되어 12년을 보냈다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접한 피타고라스는 56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남이탈리아의 그리스 식민지 크로톤섬에 학술 연구 단체이면서 수도원 성격을 띤 최초의 철학공동체를 결성하였다피타고라스 공동체는 영혼의 윤회사상을 가르치며 육식을 금하는 채식주의를 따랐고 백색의 옷과 담요를 사용하였다그후 메타폰티온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생애를 마쳤다피타고라스 공동체는 온화겸손과묵을 덕목으로 추구하였으며 신들과 양친친구계율에 대하여 절대적 신실자제복종을 설파하였다.

그의 종교적 교의는 윤회와 사후의 응보로서 동시에 인간과 동물과의 유사성을 강조하고 육식을 금하였다이론적 방면의 연구에서는 음악과 수학을 중시하였는데음악에서는 일현금에 의하여 음정이 수비례를 이루는 현상을 발견하고 음악을 수학의 한 분과로 보았다.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사상을 기록하는 것을 금지하였으며 저서를 남기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의 업적이 그 자신의 것인지 또는 초기 제자들의 것인지의 구별은 이미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오늘날에는 제자인 필로라오스와 기타 학자들의 저술의 단편에 의하여 당시 피타고라스와 그 일파의 업적이 알려져 있다피타고라스는 만물의 근원을 ''로 보았다그 수는 자연수를 말하는 것으로 이들 수와 기하학에서의 점을 대응시켰다.

예컨대 자연수 계열의 연속항의 임의의 항까지의 합은 삼각형수이고마찬가지로 기수계열의 합은 정사각형수우수계열의 합은 직사각형수라는 방법으로 정의하였다또 완전수인수의 합비례와 평균의 연구상가평균조화평균 등도 분류하였다피타고라스의 정리도 그 자신의 업적인지 제자들의 업적인지는 불분명하며 그의 증명법도 오늘날에는 알려져 있지 않다(오늘날의 그 정리의 증명법은 유클리드에 유래한다).

그런데 이의 정리에서 의외로 곤란한 문제가 발생하였다정사각형의 한 변과 그의 대각선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이다이 경우 대각선의 길이는한 변을 1이라 할 때 2가 되어 약분이 불가능한 무리수가 된다이것은 자연수만을 수로 생각한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에 있어서는 극히 난문제였기 때문에 수로부터 제외시켰던 것이다또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은 임의의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2직각(180°)과 같음을 발견하고 이를 증명하였다.

'플라톤의 다면체'로 불리는 정사면체정육면체정팔면체정십이면체정이십면체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정십이면체는 정오각형의 작도를 필요로 하지만 한 선분을 중외비로 끊는 문제로 환원시켜 이 작도에 성공하였다이 정오각형에서 생기는 성형오각형을 그의 교단의 휘장으로 채택하였다고 한다피타고라스가 수학에 기여한 공적은 매우 크며그의 영향은 플라톤유클리드를 거쳐 근대에까지 미치고 있다.

천문학에서는 지구가 구형임을 확신하고우주의 중심은 태양이며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공전함을지구 자전으로 인한 낮과 밤의 생김기울어진 자전축으로 인한 계절의 변화가 생김을 이미 설명하고 있었다그러나 이후 다른 과학자들에 밀려 1000여년 간 다른 학자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다가 16세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로 인해 과학혁명의 최초에 피타고라스가 있었음이 인정되었다피타고라스에 의해 우주는 코스모스(Cosmos)로 불려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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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토스테네스(기원전 274년 ~ 기원전 196년)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입니다. 헬레니즘 시대 이집트에서 활약했으며, 문헌학 및 지리학을 비롯해 헬레니즘 시대 학문 다방면에 걸쳐 업적을 남겼지만, 특히 수학과 천문학의 분야에서 후세에 남는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지구의 크기를 처음으로 계산해 냈으며, 또 소수를 걸러내는 에라토스테네스의 체를 고안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업적으로 제2의 플라톤이라고도 불렸습니다. “베타”(β)란 별명으로도 알려져 있다. " 그를 시기하고 경쟁의 상대로 여겼던 어떤 사람은 그를 '베타'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베타는 알다시피 그리스 어 알파벳의 두 번째 글자입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무슨 일을 하든 그 분야에서 여지없이 세계 둘째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베타라는 이름으로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라토스테네스가 손을 댄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는 '베타'가 아니라 아주 확실한 '알파'(α)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키레네(현재는 리비아의 지역)에서 태어나 아테네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세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무세이온(Mouseion)의 관장을 맡았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지역에 따라 북극성의 높이가 다른 사실 등을 근거로 지구가 공처럼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시에네(현재의 아스완)에서는 하지날에 태양빛이 우물의 바닥까지 닿는다는 것을 전해 듣고, 즉 해가 가장 높이 떴을 때의 고도가 90도가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이로부터 지구의 크기를 계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는 하짓날의 남중 고도는 82.8도이며, 이 차이가 시에네와 알렉산드리아의 위도의 차에 따른 것이며, 이를 이용하여 지구의 둘레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지구의 측정방법은 다음 포스트에서 다루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또, 에라토스테네스의 체는 에라토스테네스가 고안했다고 여겨지는 소수 판정 방법으로, 자연수를 순서대로 늘어놓은 표에서 합성수를 차례로 지워나가면서 소수 목록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알고리즘의 예제로도 유명합니다. 어떤 수가 소수인지 판별하는 방법들 중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방법이 바로 애토스테네스의 체입니다. 중학수학을 처음 시작 할때 배우는 소수와 합성수의 구분 방법입니다.

고대에 고안한 이 방법이 현재까지 수학자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쓰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 그의 수학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짐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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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파르코스(기원전 190년 ~ 기원전 120년)는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지리학자, 수학자이다. 헬레니즘 시대에 활동했습니다.

히파르코스는 지금의 터키 이즈니크인 니카이아에서 태어나 로도스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확한 천체 관측과 항성표 완성

기원전 147년부터 기원전 127년까지 천문학자로 활동했습니다. 로도스 섬에 천문대를 세워 하늘의 천체 방향을 될 수 있는 한 정확하게 측정해 약 850개의 천체들에 대한 항성표를 만들어 냈고, 각 별에 좌표를 지정하고 하늘에서의 위치를 적었습니다. 또한 별의 밝기를 등급으로 나누기도 했고, 행성이 축을 가지고 도는 ‘세차운동’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또한 현존하는 기록상 태양과 달의 모형을 정확하고 양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최초의 삼각 함수표인 현의 수표 개발

고대 천문학자들은 행성들이 원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원과 현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히파르코스 또한 이에 관심을 갖고, 기원전 150년경 부채꼴의 중심각과 현에 관련한 표를 만들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그 표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같은 분야의 연구를 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저서 <알마게스트>에 그의 업적이 저술되어 있습니다.

삼각법의 시초가 된 연구

천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삼각법은 히파르코스가 처음 생각해 냈습니다. 그가 발견한 공식 중 사인(sine)은 빗변에 대한 높이의 비가 같다는 것입니다. 이 방법을 이용해 지구의 크기를 계산하고,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를 계산했습니다. 또 그 결과는 지금과 거의 같습니다.

삼각법을 창시한것으로 여겨지는 중요한 인물이지만 우연히 지구의 세차운동의 일종인 춘분점 세차를 알아낸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것을 발견하기까지 바빌로니아 칼데아인들의 관측기록과 수학적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삼각법에의한 삼각표를 가지고 다녔으며, 구면 삼각법에 관련된 몇몇 문제를 푼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일식, 월식, 그리고 삼각법을 이용해 처음으로 일식을 예견하는 방법을 개발한 선구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유명한 발견은 세차운동, 포괄적인 초기의 성단표, 아스트로라베, 천구의 등이있습니다.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우주론의 주류를 이루기 전까지 그의 발견은 널리 통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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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 AD 83년경 ~ 168년경)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천문학자, 지리학자, 점성학자이다. 고대 이집트의 테바이드에서 태어났을 것이라 추정되며, AD 168년쯤 알렉산드리아에서 사망했다.

이름 중 클라우디오스(Claudius)는 고대 로마의 둘째 이름으로 족명(族名)을 나타내며 이것은 그가 로마 시민이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첫째 이름은 현재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당시 시민들의 일반적인 첫째 이름이 티베리우스(Tiberius)인 걸 감안하면 그의 첫째 이름도 티베리우스(Tiberius)였을 것이라 추정된다.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us)는 그리스식 이름이며 이집트의 왕가의 이름이었지만 그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인척 관계라고는 여겨지지 않고 있다.

프톨레마이오스가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 사회 일원이라는 것 외에 삶의 세밀한 부분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고대 그리스어로 책을 썼고 바빌론 천문학 데이터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이러한 그의 저서들은 후의 이슬람과 유럽 과학에서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코페르니쿠스 이전시대 최고의 천문학서로 인정받고 있는 《천문학 집대성》(Megalē Syntaxis tēs Astoronomias)있는데 이것의 아랍어 역본인 《알마게스트》란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또한 지리학분야의 《지리학》(Geography, Geographike Hyphegesis)이 학계에서 오래도록 아낌을 받았고, 점성술책인 《테트라비블로스》(四元의 數, Tetrabiblos)도 아랍세계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 밖에도 광학과 음악에 관한 여러 저서가 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뛰어난 기하학자로서 수학 분야에 중요한 업적을 많이 남겼다. 그는 기하학 분야에서 새로운 증명과 정리를 만들고 《아날렘마(Analemma)》라는 책에서 천구면(지구에서 무한대 거리에 있으며, 그 면에 우주 공간의 물체가 위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가상의 구)에 있는 점을 수평면,자오선면,수직면으로 구성되는 서로 직각인 3개의 평면에 사상시키는 문제에 대해서 자세히 논했다.

《플라니스파이리움(Planisphaerium)》이라는 책에서는 입체를 평면에 묘사하는 방법인 평사도법에 대한 문제를 다루면서 천구의 남극을 사상의 중심으로 썼다.

그는 또한 날씨 뿐만 아니라 아침과 저녁에 뜨고 지는 별까지 나타낸 달력을 만들었다. 다른 수학분야의 출판물로서는 《행성가설 Hypothesis in planmenn》이라는 책을 포함한 2권과 3차원 공간 이상은 없다는 것을 증명한 것과 에우클레이데스가 고안한 평행선에 대한 가정을 증명하려고 시도한 것이 포함되어 있는 2권의 기하학에 대한 책이 있다.

교과에서는 프톨레마이오스 정리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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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고액권인 50 파운드(약 7만4천원) 지폐의 초상인물로 천재 수학자이자 현대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앨런 튜링이 15일(현지시간) 선정되었습니다.

마크 카니 영란은행(BOE) 총재는 이날 맨체스터 과학산업박물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50 파운드 지폐 뒷면 초상인물을 공개했다고 AFP 통신, 공영 BBC 방송 등이 보도했습니다.

카니 총재는 "앨런 튜링은 탁월한 수학자로 오늘날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면서 "컴퓨터 수학과 인공지능(AI)의 아버지로, 또 전쟁 영웅으로 앨런 튜링은 광범위하면서 선구자적인 기여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튜링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잠수함 암호기 '애니그마'를 해독한 영국의 수학자로 유명합니다.

그는 1936년 '보편적 기계'의 개념을 창안해 인공지능(AI) 창조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기계가 인간과 얼마나 비슷하게 대화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기계의 사고 능력'을 판별하는 '튜링 테스트'를 창시했습니다.

구체적으로 튜링은 "만약 대화에서 컴퓨터의 반응을 진짜 인간의 반응과 구별할 수 없다면, 컴퓨터는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튜링은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지만, 1952년 당시 영국에서 범죄로 취급된 동성애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감옥에 수감되지는 않았지만 화학적 거세를 당한 튜링은 1954년 41세의 나이에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백설공주생각이 납니다.

자살 전 징후나 유서가 없었던 점 등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튜링이 베어 물은 사과는 미국 애플사 로고의 모티브를 제공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튜링은 아카데미 각색상을 받은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실제 모델로, 영화에서 영국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튜링 역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마블의 닥터스트레인지입니다.

그는 사망한 지 거의 60년이 흐른 지난 2013년에 지금은 죄가 되지 않는 동성애로 기소된 이들을 사면하는 내용의 '튜링 법'에 의해 영국 왕실로부터 사후 사면을 받았습니다.

이번 선정으로 오는 2021년부터 유통되는 새 50 파운드 지폐에는 1951년에 찍은 튜링의 사진이 뒷면에 들어갑니다.

다른 지폐와 마찬가지로 앞면에는 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초상이 새겨질 예정입니다.

50 파운드 지폐는 일상 생활에 잘 쓰이지 않아 '부패한 엘리트의 화폐'라는 오명을 얻는 등 폐지를 놓고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영국은 단계적으로 기존 종이지폐를 얇고 신축성 있는 플라스틱 필름을 입힌 폴리머(polymer) 지폐로 바꾸어나가고 있습니다.

5 파운드(약 7천400원)와 10파운드(약 1만5천원) 지폐 뒷면 초상인물에는 각각 윈스턴 처칠 전 수상과 소설가 제인 오스틴이 선정돼 이미 유통 중입니다.

내년부터 새롭게 발행될 20 파운드(약 3만원) 지폐에는 19세기 영국 풍경화의 대가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의 사진이 들어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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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발명이란 자동차에서 바퀴를 떼어낸 뒤 그 자리에 발을 달기 위해 고심하는 것이다.

— Alan Turing, <The Enigma of Intelligence>

앨런 튜링(Alan Mathison Turing, 1912년 6월 23일 ~ 1954년 6월 7일)은 잉글랜드의 수학자, 공학자이다.

케임브리지 종합대학의 킹스칼리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의 교수직을 맡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정부의 요청에 따라 나치 독일군의 암호 해독을 맡아 연합군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종전된 후에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갔으나 동성애자란 이유로 경찰에 구속되고 화학적 거세를 당했다. 이로 인해 우울증을 앓았고 결국 자택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수많은 업적으로 현대 전산학과 정보과학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동성애 처벌에 대한 우려로 독신 생활을 하였다고 알려져있다.

어릴 땐 3주 만에 읽기를 배웠고, 미적분을 배우지 않고도 미적분 고등수학문제를 풀기도 하는 등 명석한 두뇌를 자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중고등학교 때는 그렇게 큰 점수를 받진 못했다고 한다. 영국의 명문대인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한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칼리지 재학 중에 쓴 논문 <On Computable Numbers, with an Application to the Entscheidungsproblem>(1936)은 튜링 머신 이론과 노이만형 컴퓨터에 있어서 이론적 토대를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획득했다. 이때 교수로 있던 존 폰 노이만과 만났다.

에니그마암호기

1939년 독일군의 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하는 GC&CS(후일 블레칠리 파크로 불리우게 되며 현재 블레칠리 파크는 박물관이 되었다)에 참여해 독일 해군 암호를 해독하는 Hut 8 책임자가 되어 기존의 봄브(Bomby)해독기를 개량한 튜링 봄비(Turing Bombe)라는 장치를 개발했다. 이 튜링 봄비는 후일 개발되는 콜로서스라는 프로그래밍 가능 전자 컴퓨터의 기술적 토대가 되기도 했다. 이 컴퓨터는 군사 기밀로 약 50년간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다.

튜링머신

전후 튜링은 초기 디지털 컴퓨터 개발(맨체스터 대학의 맨체스터 마크1)에 참여했고 영국 최초로 프로그램 내장형 컴퓨터(폰 노이만형 컴퓨터) 구조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한다. 특히 1950년엔 인공지능에 대한 중요한 논문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을 발표, 거기에서 현재 튜링 테스트라 불리는 인공지능 실험을 제안한다. 저명한 철학 학술지인 마인드(Mind)에서 출판된 해당 논문은 (이하 튜링 기계 개념과 결합하여) 현대 심리철학 가운데 '기능주의' 조류의 효시가 되었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미국 철학자 존 설이 1980년에 제시한 '중국어 방(Chinese Room) 논증이 유명하다.

튜링 머신은 컴퓨터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것으로 명제의 증명가능성에 대한 연구에서 처음 이용된 개념이다. 튜링은 러셀의 역설이나 불완전성 정리처럼 '나는 유한번의 논리처리로는 증명 안 됨'이라는 명제가 존재함을 증명하는데, 중간에 튜링은 칸이 나눠진 긴 종이띠와, 이 위의 데이터를 읽고 바꿔쓰는 기계가 읽은 데이터에 대해서 바꿔쓰는 결과를 설정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면 이게 수학적 증명, 인간의 지능과 동일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전후에 튜링은 이 '만능기계'를 완전히 실현하려다 실패하고, 약간 변형된 형태가 폰 노이만에 의해 실현되어 지금의 컴퓨터가 된다.

참고로 튜링이 16세 때, 크리스토퍼 모컴이라는 친구를 만났는데, 모컴도 수학에 상당히 뛰어난 재능을 가졌었다. 둘이 같이 어려운 수학문제를 푸는 것을 좋아했는데, 모컴이 1930년 사망하자 모컴의 뇌에 있던 지능을 저장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방법을 생각하다가 계산이론을 창안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튜링은 전산학의 기초가 되는 논문들뿐만 아니라, 자살하기 전에는 형태형성의 화학적인 토대(The Chemical Basis of Morphogenesis)라는 논문을 저작하였다. 이 논문에서 튜링은 생물의 발생에서 새로운 형태가 생겨나는 과정인 '형태형성'을 모의 실험하였고, 지금은 당연한 유전자에서 태아가 발생하는 부분을 그 시기에 예측했으며, 또한 이 논문은 카오스 이론에서 중요한 '대칭 붕괴'와 '분기 붕괴'란 현대적 개념을 미리 파악한 것이기도 하다. 간단하게 말해서 생물학을 정밀한 학문인 수학과 물리학, 화학을 통해 설명하였고, 카오스 이론의 중요한 부분을 이미 예상하였다.

그의 명성과 능력과는 달리 말년은 비참했다. 튜링은 전쟁을 치르고 일상으로 돌아온 뒤, 아널드 머리라는 19세 소년과 애인 관계를 맺고 동거를 했다. 그런데 사실 아널드는 소년범죄단과 연루되어 있었다. 어느 날 튜링이 집에 돌아와보니 온갖 물건들이 도난당하고 방은 엉망이 되어 있었는데, 동거하던 소년과 그 일행의 짓이었다. 튜링은 아놀드와 도난 사건에 대해 경찰에 신고했고, 또한 자신이 동료 과학자들에게 당당하게 말하고 다녔던 것처럼 도둑과의 관계(동성애)를 경찰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런데 동성애 사실이 기사화 되면서 반대로 아무 잘못이 없는 튜링의 인생을 처참하게 망가뜨리게 되었다. 왜냐면 그 당시에는 영국은 동성애가 금지였고 성소수자였던 튜링은 법을 어긴 범죄자였기 때문이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튜링의 성지향성보다는 능력을 중요시 하던 동료들이 자신을 차별없이 대해주던 것에 익숙해져 있던 것이 튜링에게는 치명적인 비수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의 업적과 평소 행실과는 상관없이 당시 영국의 동성애 금지법에 의하여 앨런 튜링은 사회를 혼란시키는 명백한 범죄자였다. 동성애자임이 만천하에 공개된 그는 잘못한 일이 없었음으로 당연히 당당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과 사법부로부터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되었고, 심지어 당시 매카시즘이 만연할 때 소련측의 스파이일지도 모른다는 추잡한 누명까지 덮어쓰게 되었다. 당시 튜링은 체스나 보드 게임을 매우 즐겼는데 케임브리지 재학 중 튜링의 게임 상대에 훗날 KGB의 거물 간첩이 된 킴 필비를 비롯한 케임브리지 5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전부터 1급 컴퓨터 공학자라는 위치 때문에 영국 정보부의 감시까지 받아왔는데 이런 참사까지 겹치게 된 것이다.

 

"사회가 나에게 여자로 변하도록 강요했으므로, 나는 가장 순수한 여자가 선택할 만한 방식의 죽음을 택한다."
—본인의 유서 중 일부

결국 법원에서 동성애 혐의에 대해 여성 호르몬 투여를 통한 화학적 거세 형벌을 받게 된다. 그 영향으로 앨런 튜링은 신체의 여성화가 진행되면서 우울감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1954년에 청산염 중독으로 사망했고, 그는 사과에다 청산가리를 주사한 뒤 동화 속의 백설공주처럼 사과를 한 입 깨물어먹고 자살하였다. 생전에 튜링은 백설공주 동화를 매우 좋아했다고 알려져있었기 때문이다.그렇게 세계대전의 끝을 앞당기고 컴퓨터의 개념을 창시한 희대의 천재의 인생은 초라하게 막을 내렸다.

사망 뒤로도 튜링에 대한 대우는 수많은 장병들의 목숨을 지켜내고 조국을 수호하는데 일조한 전쟁영웅이자 뛰어난 석학이었던 생전의 업적에 비하면 처참한 수준이었다. 튜링의 부고 소식은 단지 영국의 신문에 정말 조그만하게 "천재 과학자의 비참한 죽음"이라고 기사가 하나 난 것이 전부였다. 그의 재능을 생각해 보노라면 정말이지 통탄할 일이다.

여튼 이렇게 허무하다면 허무한 죽음과 함께 그의 존재는 서서히 잊혀지는가 싶었는데, 2000년대 들어 영국의 동성애자에 대한 인권 운동이 시작되며 튜링에 대한 사죄 청원 운동이 시작, 잊혀져가는 튜링의 죽음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노동당이 집권했던 2009년에 고든 브라운 총리는 영국 정부 차원에서 튜링의 부당한 죽음에 대해 정식으로 사죄하였다. 영국 우체국은 2012년 2월에 발행할 우표에 담을 '위대한 영국인 10명' 가운데 앨런 튜링을 포함시켰다. 성문법상 범죄자였지만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또 그의 업적에 좀 더 비중을 두면서 반세기만에 명예를 회복한 것이다.

또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12년을 튜링의 해로 만들려는 운동도 있었다. 하지만 영국 하원은 이런 움직임에 찬물을 제대로 부어버렸는데 2월 6일 영국 하원에 상정된 앨런 튜링에 대한 국가적 사죄와 사면 결의안이 부결되어 버린 것이다. 아무래도 보수당을 중심으로 한 데이비드 캐머런 내각 입장에서는 튜링에 대한 사면이 동성애에 대한 용인으로 비쳐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튜링에 대한 사면을 거부하는 게 아닌가라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2013년 12월 23일, 스티븐 호킹을 비롯한 수만 명의 청원이 접수되면서 영국 정부는 결국 백기를 들었고, 여왕 특별 사면령으로 튜링은 공식적으로 복권되었다.

시안화칼륨이 주사된 한 입 베어문 사과가 시신 옆에 있었기에 자살로 결론이 났지만 사실 지금도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가족들은 사고사라고 하지만, 튜링의 해외 탈출을 두려워한 당시 영국 정보부가 암살한 것 아니냐는 음모론도 종종 나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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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드리크 빌라니(46세)

수학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필즈상을 받은 세계적 천재 수학자가 파리 시장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출마의 변도 "과학과 수학으로 도시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여론은 호의적이다. 시장 선거를 8개월 앞두고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그가 현직 시장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 유력한 여당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

 

세드리크 빌라니는 19세기 오스트리아 학자 루트비히 볼츠만이 기체의 움직임을 정리한 '볼츠만 방정식'을 연구해 2010년 필즈상을 받은 인물이다. 필즈상은 국제수학연맹(IMU)이 4년마다 개최하는 세계 수학자 대회(ICM)에서 40세 미만 학자에게 주는 상이다. 필즈 수상만으로도 세계 수학계의 스타로 부상한다.

 

빌라니는 필즈 수상자 중에서도 특히 '스타'로 꼽힌다. 천재적인 수학 재능만이 아니라 파격적 패션과 기행으로도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는 조끼가 포함된 '스리 피스' 정장만 입고, 항상 거미 브로치를 양복 왼쪽에 달고 다닌다. 주문 제작한 거미 브로치를 30여 개 갖고 있는데, 왜 거미에 집착하는지는 "개인적 경험이며 비밀"이라고 답한다. 넥타이도 19세기 스타일의 두툼한 리본형만 고집한다. 집에서 자거나 운동할 때만 빼놓고 실내에서도 항상 이런 차림으로만 지낸다. 애완동물에도 독특한 취향이 있다. 집에서 토끼 8마리, 암탉 5마리,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운다.

 

그는 프랑스 지성의 산실인 파리고등사범학교 교수와 수학 연구 기관인 '앙리 푸앵카레 연구소' 소장을 지내며 프랑스는 물론이고 유럽 수학계의 석학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프린스턴과 스탠퍼드 등 미국 명문대에서 강의할 때 구름 같은 청중을 몰고 다녔다.

 

세계적 수학자로 살아오던 그는 2017년 정치권에 뛰어들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앙마르슈 소속으로 에손주에서 하원 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과학과 정치의 접점이 필요하며 그 역할을 하겠다"고 정치 입문 이유를 밝혔다. 이후 마크롱의 AI(인공지능) 보좌관을 겸직해오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2020년 파리 시장 선거에 도전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혀왔다. 지난달 여론조사 기관 BVA가 실시한 조사에서 빌라니가 여당 후보로 나서면 재선에 도전하는 안 이달고 현 시장을 25% 대 21%로 누른다는 결과가 나왔다. 지난주에는 파리 시장을 두고 여당 내에서 라이벌로 꼽힌 무니르 마주비 전 디지털부 장관이 빌라니 지지를 밝히며 불출마를 선언해 지지세에 탄력이 붙었다.

 

빌라니는 "파리를 유기적인 AI 연구소처럼 만들겠다"고 말한다. 그는 "AI를 활용해 수리가 필요한 망가진 벤치가 어디 있는지, 쥐 떼가 어디에 서식하고 있는지 등의 정보를 파리 시청이 더 빨리 파악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이런 과학적 방식으로 도시의 청결함과 치안 수준을 끌어올려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빌라니는 또 자율주행 셔틀버스를 운행시켜 교외와 파리 시내를 연결하겠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다. 별도로 운전자들에게는 목적지로 향하는 교통 흐름과 최적화된 주차 장소를 AI가 빠르고 편리하게 전달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시민들이 도로에서 소모하는 시간을 줄여주겠다고 했다.

 

빌라니가 여당의 파리 시장 후보로 확정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마크롱 대통령의 측근인 뱅자맹 그리보 전 정부 대변인이 강력한 라이벌로 꼽히고 있다. 당사자는 부인하고 있지만 이달고 시장을 반드시 제압한다는 목표로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가 출마할 가능성도 있다고 일간 르파리지앵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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